예루살렘은 포위되어 있고 선지자는 그들에게 구원에 대한 한 징조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메시야는 태어나야 한다. 여기서 구속자가 언급되어야 할 이유를 밝히고 설명하는 것은 실로 중요함임은 온 민족의 구원이 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제안에 대한 아하스의 불신앙적 거절에도 불구하고 정하신 계획을 따라 마침내 메시야를 일으켜 세우실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다윗의 온 집 즉 유다 백성 전체에게 놀라운 임마누엘을 징조로 선포하실 때에 이 특별한 약속을 확증하고자 구원자를 일으키심으로 약속의 근거를 제시하셨다.
왜 아하스 왕에게 임마누엘이 대변 되는가? 이는 현실 역사와 관련이 있는 사건으로서 아하스 왕의 믿음 없고 정치적 실패로의 왕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마누엘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이사야의 결별 선언이다.( 아하스는 716년까지 통치)
여기서 징조란?
적의 연합 공격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역사적인 사실과,
죽음과 사망으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구속사적 사실을,
이중적으로 오묘하게 예언하고 있는 복합적으로 성취될 위대한 징조를 말했던 구속장이다.
7:14에서는 임마누엘에 대하여 어떤 설명도 완전히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데 이는 이 아이인 임마누엘이 다음 장에서 다시 두 번이나 나타난다는 사실로 분명해진다. 8:8,10에서 그 이름이 번역되었긴 해도...신비롭고도 중요한 한 아이가 9:6, 11:1에 다시 나타난다. 이러하기에 7:14절에서 임마누엘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졌다라고 말할 수는 없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두 구절 9:6, 11:1에서 거의 모든 주석가들은 일치되게 메시야라는 점을 인정한다. 거듭 언급되는 이 아이는 임마누엘이라 불리운 그 아이로 바로 이런 이유로해서 7장~12장은 임마누엘書로 불린다.
여기서 Almah는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인으로 성경 용례 중 6번(시편 표제에서 복수가 사용된 곳은 고려치 않겠다.)에 걸쳐 나타난다.
- 창24:43에서 리브가에 대해 사용되는데 모든 문맥을 고려해 볼 때 거기서 그 소녀는 분명히 처녀였으며,
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섰다가 청년 여자가 물을 길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하여
- 출2:8에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에 대해서도 이 점이 동일하고,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 시68:25에서 성소에서의 장엄한 종교 행렬들에 나타날 가치가 있는 존귀한 여성을 가리킨다.
25 소고 치는 동녀 중에 가객은 앞서고 악사는 뒤따르나이다
25 앞에서는 합창대가, 뒤에서는 현악대가, 한가운데서는 소녀들이, 소구 치며 찬양하기를
- 아가서 1:3의 용례를 고려해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분명한데 이는 솔로몬이 사모하는 자는 처녀가 아니고 부인이었겠는가? 이는 왕비들과 첩들과 대조되는 젊은 숙녀를 가리킴에 사용됨으로 처녀란 뜻이 함축돼 있다.
3 네 기름이 향기로와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3 임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 사람들은 임을 쏟아지는 향기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아가씨들이 임을 사랑합니다.
3 임의 향내, 그지없이 싱그럽고 임의 이름, 따라놓은 향수 같아 아가씨들이 사랑한다오.
-끝으로 잠언30:19에서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라는 표현에 여러 해석이 가해졌으나 이는 음녀의 대조적인 행실의 한 문맥인 20절에로 언급됨을 보아서 이 여자는 순결한 자의 범주에 속하는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19 곧 공중에 날아 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20 음녀의 자취도 그러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 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19 곧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와, 뱀이 바위 위로 지나간 자취와, 바다 위로 배가 지나간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하였던 자취이다.
20 간음한 여자의 자취도 그러하니, 먹고도 안 먹었다고 입을 씻듯이 "나는 아무런 악행도 한 일이 없다" 한다.
Almah는 청년과 대조를 이루는 단어로 결코 결혼한 여자를 가르키지 않고 순결성을 지닌 '처녀'를 가르키는 단어가 분명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처녀인 여자' 라고 할 때 ' naAla Almah'(신22:23)라고 하는 복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통하여도 알 수 있다
이같이 Almah는 처녀라는 내외증이 충분하며 알마의 용례를 세밀히 고찰할 때 이는 분명 기혼 여성에게 사용되기에 무리임이 증명된 것이다. 또한 여성명사 Almah와 같은 어근인 남성명사 Allam도 모두 결혼 전의 소년에게 쓰여졌으며 삼상17:56,20.22, 고고학 비문에서 Almah와 동근어인 고대 우가릿어 gimnt가 오직 결혼 전 여자에게 사용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고찰할 때 Almah란 정결한 결혼 적령기의 숙녀를 뜻함이 자명하며 이런 자를 처녀로 간주해야 한다는 점을 부인치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히브리어에서 순결한 처녀를 가리키는 Betulah를 본문에서 사용하지 않았음으로 본문의 강조점이 처녀성보다는 신체상의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이 부여돼 있다는 사실로서 Almah(어근 알람은 감추다. 숨기다 뜻)라는 표현이 Betulah와는 달리 일반적인 처녀가 아닌 남자와는 격리되어 자라온 성숙한 처녀 즉 동정녀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음임을 알 수 있다.
구약 헬라어 70인역 LXX에서 이를 처녀를 가리키는 헬라어 파르테노스 παρθενσs를 사용하였으며,
마태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동정녀 탄생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RSV의 난외주에 위치한 처녀라는 말은 본문으로 옮겨지고 오히려 젊은 여자가 난외주로 옮겨져야 타당하다.)
여기 Almah 논쟁에서 선지자가 만일 남자와 교제하여 어린아이를 잉태한 젊은 여자를 말해야 했다면야 과연 무엇이 신기하였을까? 선지자가 신기하고 비상한 징조나 기적을 말해주겠노라고 선언해 놓고서 달랑 한 젊은 여인이 잉태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이 얼마나 어이없으며 멸시스런 일임을 누구나 알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도 안됨에서 벗어나 연속된 임마누엘의 제시에서 읽을 수 있었음같이 7:14에서 이는 자연의 질서에 의해서가 아닌 성령의 은혜로운 힘에 의하여 잉태하게 될 한 처자를 말하고 있음임이 아주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실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셨다(딤전3:16)라는 고상한 말로 찬양하는 그 불가사의다.
선지자가 바로 이 동정녀 탄생의 징조야말로 사건의 위대성을 묘사하는 ``주께서 친히``, 그리고 ``보라``라는 강조적이고 감탄적 수사어를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그 처녀는 이사야의 아내도 아니며 당시대의 어떤 미지의 젊은 여자도 아닌 바로 메시야의 육신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를 가리킴이었다.
여기서 태어날 히스기야가 임마누엘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 아이가 신적이라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이사야의 다른 자녀들의 이름들이 그 당시의 중요한 사실들을 반영해 주듯이 이 이름도 위기적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단순히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궤변으로 이 이름이 히스기야에게 주어졌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손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지... 그 나라를 구원했던 모세나 여호수아도 그렇게 불려지지를 않았다. 그러므로 이 임마누엘은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모든 사람보다 우월한 이름으로 그 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과 그 후에 나타날 모든 자를 능가한다.
이 아이가 언제 태어나는가? ... 2년 안에(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예언후 2년 수리아와 아람은 망했다. 732년 721년) 이는 새 왕이 태어날 것을 제시하므로 후임 유대왕 히스기야를 임마누엘로 지칭하였는데,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이같은 표징으로 메시야를 예언한 것이다. 여기서 버터와 꿀은 왕들이 먹는 것으로서 유대인들은 어린이가 태어나면 젖을 먹이기 전에 버터와 꿀을 맛보게 하는 관습이란 그리스도가 가진 참인간성을 예시하는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선과 악을 분간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또는 철든 나이가 될 때까지.. 어린이로서 자라나시게 될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누가는 말하기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증거했다.
이렇게 7:14에서 이 아이가 하나의 희미한 모형으로서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고 있으며 이 임마누엘을 문자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될 수는 없었기에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해서 그 실제적 사실 때문에 그리스도를 가리킴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는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가 가진 본성을 취하심으로서 자신을 우리와 연합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 또는 우리와 연합하시는 하나님으로 불린다. 이렇듯 임마누엘은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즉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신적 호칭이요 죄 많은 인간들을 그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메시야를 가리키는 이름인 것이다. 마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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