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위일체 정해 :: (양태론 개념 끝내기)
이는 기독교의 목회자와 신부 및
그리고 기독교 내부에서 나간, 사이비나 이단 교조자일지까지라도 분명하고 겸허히 깨달아 알 길 바라야함이라 여겨지기에..
(여기서 필자가 왕국회관을 제외함은 저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실상 저들은 기독교내부서 파생된 이단이 아닌 “기독교외부”서 가만이 들어와서 "~이단인척하는 이교도"로서 야웨 쓴 바알로(야웨 용어를 훔쳐다 뒤집어 쓴 바알) 간특한 자들이기 때문이랍니다. 단신론인 바알의 눈으로는 전 성경 계시인 유일신의 구경시스템을 이해할 두뇌력이 도도무지 안되기에이며? 아니 모방할 수 없음이기에, 또한 사랑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는 야웨와 바알의 혼합이란 절대 불가하므로 거부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이며, 저들이 언어를 혼합화로 섞었지만은 성서 계시를 비추어 볼 때 저들의 표현력은 분명한 오류로 판명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주신 바알 프리메이슨인 왕국회관 창시자 럿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의 무덤 :: http://www.theforbiddenknowledge.com/hardtruth/dirtywatchtowersecrets.htm )
바알의 눈에 대한 필자의 비판 글은 제 블로그 http://kr.blog.yahoo.com/haabbu/1030.html
-「여호와증인의 오류비판-1」
- 처음 나신 자..골1:15 πρωτοτοκος , 여호와증인의 오류 비판-2
(外 3편 정도 더 비판점의 자료를 나름 구비 여겨지나 아직 2편여 정리를 하였군요./ 본 글도 약간 보강 측면이 남아있음은 아들 부분의 추가적 이해와 구약 히브리어 성구에서....추후 더하겠습니다. )
-가나안 족속의 진멸은 타락한 신관에 있었다--이 글도 위 오류비판에 이은 직접적 비판점이 되겠습니다.
-다빈치코드 핵심 비판 - 1, 2 <참고하실 글이구요;>
-양심적 병역거부 비판 (여증인편) : 6계명 해석면에서 <이 역시 참고에 도움이 될 측면 있다 여겨지기에..>
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필자 역시 우문으로 오다가 뒤늦게서야 깨닫던 중 하나님께서 내적 영적사람으로 경험을 시켜주시기를 네가 삼위일체를 올바로 안다고도 하셨기에, 이후 참고문헌들을 살펴보았더니만 유수 신학자들은 이미 아래와 같이 애용 파악했었던 바로서,
그간의 무지적 간과를 심히 크게 부끄러이 여기며 이런 우문적 깨달음이라도 나눈다면야, 근거를 올려봅니다.)
성령의 슬기와
성자의 지혜와
성부의 자애를... 마실찌니 !!!
내, 안, 속, 내부구조 용어로서 삼위성을
유력신학자들이 다 파악했음이란?
바로 세분이 한분 하나님이라 함을 파악함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말로서인데,
즉 3위1체를 설명함에 있어서 3위한분이란 의미는 "유일신의 내부적계시구경시스템"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히브리어 구약원문이나 헬라어 신약원문이 지향하고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단일신의 양태론성이 아니라 삼위일체성의 유일신 의미로서였죠.
또한 전 성경이 이를 지지하고 있음에.. 창조에서, 노아전에서, 토라에서, 성문서와 선지서에서, 복음서에서, 서신서에서, 계시록에서
씨알과낱알처럼 경의 전체 뿌리를 계시로써 얽혀 있죠.
필자의 의문점은 삼위일체의 세 신격인 :: 삼 위격-인격 용어에서
논제는 이(신학)를 철학(심리학적)으로 과연 담론해 낼 수 있겠느냐는 점인데요....
<종합판>
삼위일체가 구약에서는 암시적으로 가르쳐졌으나, 신약에서는 명시적으로 계시되었다. 유해무 신론 p.153 2D / 삼위일체론이 구약에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의견은.... 잘못된 것이다. 벌콥 신론 p.283
(노아 홍수 전에도,,, 하나님, 하나님의 신이 나오고 그리고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강림)하셨나니~(필자 부정하는 자들에게)~ 정죄하려 하심이라! 유1:14~15. ..... 이렇게 노아전에도 삼위가 다 나옵니다. 여기서 유다서의 인용 글이 위경으로 경하다 하실 분에게는?... 에녹서의 위경 그 내용 전부가 일절 가필적 가작일까요? 아니면 이전 전승을 일부 포괄하였을까요? 그래서 신약정경인 유다서에로 인용되어 노아전 성자의 존재를 밝혀줌엔 영감의 신비스런 합당성이 숨어 있습니다. 즉 에녹서는 정경이 아니지만은 정경인 유다서로 노아전 시대를 밝혀줌이었군요.)
우리말에도 수를 셀 때 사용되는 말 중에 하나 둘 셋과 같은 말이 있고 - 한단 두단, 한접 두접, 한되 두되 라고도 쓰이듯이.... 전자는 절대단수이며 후자는 복합단수입니다. 히브리어에도 ‘하나’를 나타내는 두 단어가 있는데 복합단수인 ‘에하드’와 절대단수인 ‘야히드’ 가 있습니다. '에하드'는 복합단수로, 밤알 두세 개가 한 송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말할 때 쓰이며, ‘야히드’는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는 사과 한 개 같은 것을 표현할 때 쓰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웨는 에하드אהד(오직 하나)인 야웨이시니~” 신 6:4 복합단수로 쓰였으며 그러므로 예수의 실체란? 복수인 엘로힘 그분으로 바로 자존자이신 오직 하나인 에하드 야웨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1인칭이 3인칭으로 바뀌어 야훼가 된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CLC, 1985,11,20, p.135
야웨는 1~3인칭이다. 아이히로트, 구약성서신학 2권,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9.30 pp.33,45
하야--->야훼,, (3인칭 단수 남성형) 장국원, 고대 근동 문자와 성경, CLC pp.36~37
경륜적삼위일체론과 구별하여 내재적 또는 본체론적 삼위일체론이라 한다.(편의상 3.1로 표현하겠습니다.) 경륜적3.1은 내재적3.1론으로 내재적3.1은 경륜적3.1이다. 유해무, p.186, 1~3H,16~17H / 본체론적3.1이란 영원부터 신격 안에 실재한대로의 삼위일체를 의미하고 경륜적3.1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대로의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박형룡. p.206. 2D
( 필자해설 ) 복음서는 경륜적삼위일체를 서술하되 이 경륜적삼위일체하나님이 본체적삼위일체이심을 나타내심이다.. 즉 기독교신학이 경륜적삼위일체를 성육신에 적용하되 이는 동시 본체론적삼위일체를 역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경륜적삼위일체와 본체론적삼위일체서 통일로서 질서적과 논리적 시차만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분리적이 아닙니다. 즉 경륜적삼위일체는 본체적삼위위일체시다!!! (번복 강조함에 중요성이....)
복음서 역사에 나타나신 하나님(경륜적하나님)은 그 본체론적하나님이시다. 머 이런 말....
첫째, 속, 안, 내부, 내부구조 파악해야하며,
둘째 이 하나님 내부의 삼위 신격이 과연 무엇이냐가....
▷ 이를 내적으로는 삼 위의...
각 인격면과
각 형상면을 소유하신....여기 내적구분에서 위격의 각 형상면이 중요함 임은 인격만이면 심리학 철학적 정신분석학 내로?, 신학은 이러한 적용을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위격 하나님은 심리성만이 아니지란 말이 아닌가!!!!?
(박해경, 조직신학요해 - 교의학적 정의에서 :: 하나님은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성자,성령이라 불리우는 3위(3인격)가 존재한다. 사람처럼 분리된 인격이 아니라 서로 인격 관계를 가지지만 그것은 신적 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이다. p.38.1D )
“한 신적 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이신 삼 인격적이시다.”
(아래 신학자의 글들에서 본래에 인격은 형상으로 교호되는 의미로도 쓰인 듯이 보입니다만, 아니면 본래 인격이란 고전적인 삼중적 의미를 현대심리학에서 단인격론으로 가져왔다라? 아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음심이 바로 인격 의미로 영적의미이다라는 말로서인 거죠,
그렇지만 여기서 필자가 삼위의 정의를
인격성 용어에다가 형상면을 적용했음임은 카이퍼 신론의 절대성과 인격성 용어에서 적용한 듯 여겨집니다만...
( 카이퍼 신론 / 인격성이란 인간계에서 빌어 온 개념으로 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적절한 것일 수 없음은 사실 신에게 인격성 개념은 적절치 못하고, 원칙상 우리가 신에 대해 적용하는 다른 신인동형론적 표현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학은 신의 존재를 지칭하기 위해서나 그 존재 내의 세 실존양식과 관련하여 단지 더 나은 용어가 없어서 머뭇거리며 채용했을 뿐이다. 고트리브 피히테, p.49 그러나 동시에 범신론이 이 개념의 부조화성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을 명백히 드러냈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절대성과 인격성의 대립은 사실상 긍정적신학과 부정적신학의 대조와 동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인격성과 절대성이 성경 내에 나란히 나타나는 것이다. p.19.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영역을 떠나자마자, 우리는 곧 모든 종교체계와 철학체계에서 하나님의 절대성과 인격성이 함께 통일되어 나타나는 것이 깨어짐을 주목하게 된다. p.20 )
아무튼 인격 용어를 보충함에 있어서 현대 심리학의 부족성을 신학면에서 도움을 가져왔으며 필자도 형상면을 지적하여 삼신격의 세 인격에서 형상면이 보충되어야 완전한 의미에 도달되어짐을 역설하고 있씀입니다.
▷ 통일적으로...
한분하나님이시다.
이를 필자는 하나님의 “내외존재구조적양태성“이라 칭하고 싶은데요...
( 카이퍼 신론 / 인격성이란 인간계에서 빌어 온 개념으로 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적절한 것일 수 없음은 사실 신에게 인격성 개념은 적절치 못하고, 원칙상 우리가 신에 대해 적용하는 다른 신인동형론적 표현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학은 신의 존재를 지칭하기 위해서나 그 존재 내의 세 실존양식과 관련하여 단지 더 나은 용어가 없어서 머뭇거리며 채용했을 뿐이다. 고트리브 피히테, p.49 그러나 동시에 범신론이 이 개념의 부조화성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을 명백히 드러냈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절대성과 인격성의 대립은 사실상 긍정적신학과 부정적신학의 대조와 동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인격성과 절대성이 성경 내에 나란히 나타나는 것이다. p.19.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영역을 떠자자마자, 우리는 곧 모든 종교체계와 철학체계에서 하나님의 절대성과 인격성이 함께 통일되어 나타나는 것이 깨어짐을 주목하게 된다. p.20
하나님은 이루형언할 수 없는 분이라고 할 적에, 형언할 수 없다는 것은 부정이 아닌 긍정성인 표현성의 무한성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이다. 표현을 못한다가 아닌 바로 표현의 한계성을 지적한 것이기에 이다.
아타나시우스가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모든 존재와 인간의 사유 위에 높여지신 분으로.. p.24 그 어떤 지성도 바르게 정의 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분, / 신은 이루 형용할 수 없고 불가해적인 존재로 (다메섹 요한), 초본질적 무한성이요 초정신적 통일성이다. / ... 부정과 긍정을 모두 초월하신 분이시다...위디오니시우스
~중 략 ~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의 말은 지극히 "철학적"인 발언이었고, 당시의 신학자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모두가 오리게네스의 영향 하에 있었다. 아타나시우스가 없었다면 교회는 완전히 철학자들의 손에 놀아났을 것이며 고백은 황폐화되었거나 아니면 황제의 칙령으로 찬란한 헬라神 숭배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A. von Harnack,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Ⅱ p.224 / 유해무 신론 p.153, 각주97)
<박해경, 조직신학요해,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 조직신학교수> 교의학적 정의 :: 하나님은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성자,성령이라 불리우는 3위(3인격)가 존재한다. 사람처럼 분리된 인격이 아니라 서로 인격 관계를 가지지만 그것은 신적 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이다. p.38,1D,1~4H
삼신론 비판란에서 :: 고대 교회의 John Ascunages와 John Philoponus는 하나님이 세분으로 존재하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제자로서 중요하게 관련되듯이 하나님도 그러다하여 삼신론에 떨여지고 말았음은 한 신적 본체 안의 세 인격을 몰랐다.p.39.3D,4H
* 부제 :: 단락표기에서 전p.D후반부는 ‘-1D“ 표기하였음.
-------
부언 ::
삼위일체 정해 :::
삼위일체는 "야웨의 3인격"에서 나온다.
즉 구약에서 야웨, 야웨현현, 야웨신
이렇게...
엘로힘은 권능의 복수이나....
야웨는 엘
...................
이 야웨현현(성자)자가....구약의 메시야로,
복음서의 메시야 예수로 오다!!!! 메시야인 예수란 바로 구약의 야웨현현이요. 창조의 근본 조물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창조의 근본이신 조물주예수는 경륜적3.1G으로서 동시 본체론적 3.1G이시라는 것이다 우주계와 영계의 시공을 초월해서....
그렇기에
이방종교의 단일신인 바알에서 3위는 절대 찾아질 수가 없음임은 이는 야웨의 고유성이기에
수메르의 신 바알과 인난나....(수메르의 본래 신은 남신 바알이었는데, 여신 인난나<달신>로 혼합 음란하여 이후 세계 역사는 다신적 우상의 미로자궁으로 창궐케 되었다.)
이같이 니므롯과 세라미스 그리고 담무스로 상징성의 3.1을 겨우 취해 가지고서
이방종교 역사에 면면히 그림자로 남아 있게 된 것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3.1성을 빌어 간 겨우 비유의 한 조각으로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3위 한분 하나님의 존재하심 양식 그대로, 계시성 3.1의 유일신이신 야웨가, 갈보리 예수로 와서, 오순절 그리스도 영으로의 실체로 드러났습니다.
이방종교는 단일신을 드러내며(다신론이라던가) 3.1을 찍어다가 모방했지만 그림자로 마당만 밟을 뿐인데,...
이를 어찌 성경의 3.1 실제성과, 이방의 모방적 3.1을 비슷하다하여 비교조차라도 가능하다는지요? 이는 무지몽매의 남용이 빚은 곡해이다.
도대체 태초 창조의 역사 이래로 조물주의 존재성이 이렇게 투명히 드러난 예가 어디 있을까요?
과연 이 실체적 나타내주심을 요나처럼 피하여 의탁하되
....무덤 어디에로? 음부 어디에로? 어두움 어디에로?, 불못 어디에라도 꼄쳐 숨겨져서인들
3.1 유일신 실체로서 나타나 오신 조물주를 힐난 조롱하고 비난하여 불만을 파도처럼 토하며 욕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정중동이 고꾸라지랴???
과연 그러하다면 좋겠다!!!
그 때에 알 게 될 것이다.
지옥문이, 음부 곳이, 불못 곳이, 너의 불합리함을 들을 것이며 볼 것이요 증거할 것이라고...
??????????
?????????
?????????
???????????
----------------
참고문헌 // 아래 근거에서 발췌 :::
<유해무>
p.154,2D 터툴리안은..... 세 위격이 한 본질 안에 동거하므로 이는 한 하나님이다. p.154.15H 삼위 하나님 내의 상호관계성을.. p.163 각주 110) 칼빈은 ...하나님 내에서의 위격 구분은 성자께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계시됨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Ⅰ.ⅷ.16) p.165.13H하나님의 한분이심은 단순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님 안에는 구별은 있어도 분열은 없다. 하나님 안에서도 한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속성들 간에 충돌은 없다, 하나님은 여상하시다(시 102:28) 하나님이 성령, 빛, 사랑(요4:24, 요일1:5, 4:8)이라 해도, 3부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창조주와 구속주도 한 분이시다. 이 단일성/단순성의 관점에서 삼위 구별도 가능하다. 이 삼위 하나님이 참되신 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당신의 속성들로 증거된다.p.177.1D 하나님의 계심은 신의 본성의 측면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삼위 하나님의 계심이다. 이 삼위 하나님의 인식도 계시된 하나님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것이다. 언필칭 비공유적 속성은 삼위 하나님을 내외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각 위격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p.186.2D
<벌콥 신론>
벌콥 삼위일체가 구약에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의견은....잘못된 것이다. p.283
더러는 신성 안의 인격적인 구분들을 아예 무시해버렸으며, p.278, 2D, 2H
..발트는 신성 안의 세 위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일성 속에서.. p.281, 1D, 10,11H 그리고 우리가 삼위일체를 언급할 때 일체 속의 삼위와 삼위인 일체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p.281, 2D, 4H
삼위격적인 존재는 신적인 존재 안에 있는 필연성이며, 쉐드는 신성 안에 있는 각 위격들의
이것은 하나님이 삼위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가능하다.
하나님 안에서의 위격의 구별들을 내포하고 있다.
신적인 본체 안에 위격적인 자기구별...
하나님 안에는 서로 병립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는 세 개체자는 없으며, 단지 신적인 본체 안에 위격적인 자기 부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속적으로나 수적으로 하나이다.... p.285
칼빈은 신적본체 안에 있는 실존(칼빈) 우리는 신적 존재 안이 자기 구별들이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나,너,그를 함축하고 있음하여 ...... 서로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3:16: 4:1: 요1:18: 3:16: 5:20-22: 14:26: 15:26: 16:13:15)
신적 본체는 나누일 수 없으며 따라서 신성의 삼위 속에서 하나이다. p.286. 6H
기독교의 아주 초대로부터 여러 자료들로부터 도출해 낸 유비들에 의하여 삼위일체에 관한 시도에서 특별히 인간의 구조적 본성이나 심리학으로부터 유래한 것들에 적용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디었다는 시실을 고려해 볼 때 만약에 삼위 일체적 생활의 어떤 흔적들이 피조물들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 가장 분명한 흔적들은 인간에게서 발견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정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p.288
신성 안의 위격적 구별들을.. p.290. 23H
<박해경, 조직신학요해>
교의학적 정의 :: 하나님은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안에는 성부,성자,성령이라 불리우는 3위(3인격)가 존재한다. 사람처럼 분리된 인격이 아니라 서로 인격 관계를 가지지만 그것은 신적 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이다. p.38.1D
삼신론 비판란에서 :: 고대 교회의 John Ascunages와 John Philoponus는 하나님이 세분으로 존재하는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세 제자로서 중요하게 관련되듯이 하나님도 그러하도 하여 삼신론에 떨여지고 말았다. 한 신적 본체 안의 세 인격을 몰랐다 p.39.20H
여기 세 형태를.... 제럴드 브레이 pp.240.....그 형상을 기술할 수 있는 단어를 원한다면 인격(person, 위격)이라는 신학적인 용어를 채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또한 칼빈은 인간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만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구주와 우리의 관계에 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다루는데 필수적인 사실들도 희생하지 않고도 그리스도의 경험에 대한 온전히 삼위일체적인 이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제럴드 브레이> pp.234,236, 262,281, pp.279-284
위격의 보존:::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감탄할 만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의 최고 현현이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신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로고스라는 사실일 것이다.(요1:14)...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 기이한 사실이 함축하는 바는 온전히 탐구되지 않았다. 자유주의신학의 수법들 가운데 하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위격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의 인격을 믿는 것이지 명제들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더욱 밀고 나가서 예수님이 육체가 되신 말씀이란 사실을 부인한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위격은 결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될 수 없다. 이에 대해 자크 엘룰이 감칠맛나게 표현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바로 그 위격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아들의 성육신 안에서만 효과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성육하신 말씀은 사실상 인류에게 가장 온전하게 주어진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인격성은 말씀의 문자성 및 지성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선지자들을 통한 오랜 전해진 말씀은 성육신 하신 말씀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위격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결실을 맺는 발전의 극치로 여겨야하는 것이지, 기록된 말씀과는 아무런 실제적인 관계도 없는 새로운 출발로 여겨서는 안된다.
인격이라는 말의 현대적 용법에는 성경과 기독교전통이 그 용어를 사용할 때 의미한 바를 맛보기 어렵게 만드는 두 중요 측면이 있다.
인격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신학적인 면에서 인격 단어 사용이란 일반적인 여러 용례들 가운데서 한 가지 용례를 특정화한 것으로, 특히 라틴어식 페르소나의 맥락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실재를 표현에 적합성으로 허용되었던 것이었다.
현대 세계에서 인격(페르소나) 정의는 개인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그럴듯한 선험적 근거가 분명 단수로 구별되기 때문이나 (현대의 접근 방법의 전형적인 예는 지성과 의지를 강조하고 그것들을 인격을 구성하는 것으로 보는 것인데 이는 심리학적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서 여기로에 그친다면야 본래 두 단어의 저변 흐르는 역동성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을 놓치게 된다.
인격의 경우 그 단위는 다른 동종의 단위와의 관계에서 성립되나 개인의 경우 그 단위는 다른 단위들로부터 구별되고 분리됨으로서 성립되는 것으로 즉 개인은 페르소나의 분리성을 강조하는 반면에 인격은 관계적인 면에서의 능력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pp.280끝~281 상 미정리)
기독교적인 맥락에서 정신(spirit)은 지성과 다른 것으로 정신이란 인간존재의 물질적 구성 요소가 아닌 때로는 영혼과 똑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진다. 사도바울은 인류를 지성 혹은 영혼의 영역과 대면하여 서 있는 영적인 영역 참여자로 생각했다 바울이 보기에 영적이 된다는 것은 영(spirit)이신 하나님의 본질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첨언~
(안락사문제서도)
현대 심리학은 다만 의학의 분과로 전락하여 신적인 것을 무시하고 수용할 수 없기에 지금은 한 개인의 심리적인 속성들의 총체를 의미하는 경향을 띠게 되어 인간 본성에 기반해 죄와 죄책감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음은 물리적 예속하이다.
그러나 인격의 본래 의미를 추구할 적에 페르소나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성을 동시 의미하는바로서 양심을 포괄한다. 이처럼 인격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 없이는 페르소나 인격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될 수 없다.
<카이퍼 신론>
인격성이란 인간계에서 빌어 온 개념으로 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적절한 것일 수 없음은 사실 신에게 인격성 개념은 적절치 못하고, 원칙상 우리가 신에 대해 적용하는 다른 신인동형론적 표현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다. 기독교 신학은 신의 존재를 지칭하기 위해서나 그 존재 내의 세 실존양식과 관련하여 단지 더 나은 용어가 없어서 머뭇거리며 채용했을 뿐이다. 고트리브 피히테, p.49 그러나 동시에 범신론이 이 개념의 부조화성을 지적함으로써 그것을 명백히 드러냈다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절대성과 인격성의 대립은 사실상 긍정적신학과 부정적신학의 대조와 동일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식의 경험계에 제한된다는 칸트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불가지론은 무신론으로 환원되는 모순적 잘못을 범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루형언할 수 없는 분이라고 할 적, 형언할 수 없다는 표현성의 무한성을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표현을 못한다가 아닌 바로 표현의 한계성을 지적한 것이기에 이다.
하나님의 인격성과 절대성이 성경 내에 나란히 나타나는 것이다. p.19.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영역을 떠자자마자, 우리는 곧 모든 종교체계와 철학체계에서 하나님의 절대성과 인격성이 함께 통일되어 나타나는 것이 깨어짐을 주목하게 된다. p.20
아타나시우스가 말한 바와 같이 그는 모든 존재와 인간의 사유 위에 높여지신 분이시다. p.24
그 어떤 지성도 바르게 정의 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분, 다메섹 요한의 말따나 신은 이루 형용할 수 없고 불가해적인 존재로, 초본질적 무한성이요 초정신적 통일성이다. 위디오니시우스... 부정과 긍정을 모두 초월하신 분이시다.
칸트...
슐라이어마허...
헤겔...
포이엘바하...인격적인 하나님이란 사람의 존재에 불과하고, 신학은 인간학일뿐이다.
(... 여기서 인격 용어에 대해, 어원적으로는 고전적이해에 미달한 불완전한 현대 단인격론으로서의 표현임을.. 코레트의 철학적인간학에서도 현대 인격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필자 또한 인격 용어가 심리성 측면이라는... )
힐라리는... 하나님은 알려지지 않으신 분으로가 아니라 묘사할 수 없는 분으로 아는 것이 온전한 지식이다
어거스틴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그를 철저히 다 알 수 없는 것이 이상스러운가? 만일 하나님을 네가 철저히 다 안다면 그는 신일 수 없을 것이다. 성급하게 안다기 보다는 무지를 고백하도록 하라. 신에 대해 조금 아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를 철저히 다 안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주장은 그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전제하면서이다,~~~
결 론 ::: 삼위일체에서 양태론 개념을 끝내기서...
삼위일체론은 유일신이지만, 양태론의 결론은 단일신으로 바알론이다는 점을 명확히 봄에 본 의의가 있겠다.
유일신이란?
한 하나님 안의 성부,성자,성령의 활동적 실존 양식인 세 신격을 위격(인격)으로 쓰였으며
이를 세인격과 세 형상으로 파악하였다. 바로 이게 삼위일체의 정해이다.
.......하나님은 본질적 존재에 있어 한 분이시나, 이 한 분 본체 안에 성부,성자,성령이라 불리우는 3위(3인격), 세 형태(형상)으로서 존재하심이다.
첫째, G 속(안,내, 내부, 내부구조)....라고 유수 신학자들은 다 파악해왔으며 이는 우리는 성경 계시의 신앙고백적 입장과도 동일하다.
이러한 근거는 ::
영이다란 측면에서라기 보다는.........천사나 귀신도 영이고, 천사는 단인격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이다에서 찾아진다./
......인간구조 2분설(히브리적 구약),3분설(헬라적 구약)을 통찰해야 한다
여기서 人 --> 內 入
...... 또한 근간 필자의 미력한 영성적 경험을 통찰 동원해보니....
본래 인격 용어는 사람에게서의 1~3분설을 통찰한 바인데
인격이란 용어가 육에는 기능적으로 혼에는 지정의로, 영에는 직관양심영교로 적용되는 바였다. 즉 인격이란 용어자체가 영성 경험면에서 3중적 의미를 포괄한다는 점이다. 이 관점에서 고대신학적 입장의 타당성을 찾을 수 있었으며, 사탄의 영으로 창조에서 인격성을 3중적으로 비적용하고 단인격으로의 차이점을 발췌할 수 있었다.
둘째, 그 한분 안의 삼신격(위격)에서
1) 형상 = 인격... 은 교호적 용어이다라는 측면에 대하여
(고대신학도 형상=인격으로 여기지를 않았으며, 다만 마뜩한 대체 용어가 없어서 머뭇대어 차용한 것일뿐 전연 동의치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인격 용어가 삼위를 표현함에 있어서 사뭇 완전치 못한 반쪽임을 인정해야 한다.)
2)
-인격
-형상의.... 두 측면이라 함에 있어서의 단점은 현대철학이나 현대심리학적 인격의 규정 용어에는 한계성이 있다
이는 심리학성에 불과하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밖에 없으므로
양면성인 인격/형상의 두 용어로서 삼위여야 가장 완전한 이해라 여겨진다.
셋째, 3.1G이 성경에서 보다 더 분명히 통찰되는가에서,
신약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 하나님의 구경을 제시하고
구약은, 야웨, 야웨현현, 야웨신으로 제시한다.
그러면 노아전 계시에서 삼위의 분명한 근거를 보여줄수 있을까? (전통적 이해인 요1:1~3의 창1:1 태초와의 이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존방식- 창조에로 신약을 들어 와 외에
유다서에 인용인 에녹서에서... 아무튼 구체성이 나오다에 핵심관점임.
(유다서에서 위경인 에녹서를 인용했음에 대한 변호에서 :: )
( 참고 욥기서에서도 구속자가 나오고, 잠언에서도 30:4 전능자의 아들이 나오며 )
-아브라함.이삭, 야곱에서..아브라함의 두 야웨, 야곱의 기묘자는 엘.. 불가견 성부에 대비한 가견하나님으로서 성자이고,
-출애굽에서 .....야웨현현(자) 으로서, 출애굽에 자신의 백성의 고난과 해방에 참여하신 분, 이는 아브라함 송아지고기 야웨와 야곱의 얍복강 씨름 기묘자 엘인 성자하나님으로서인 이 야웨현현으로서 복음서에 성육신 메시야예수로 드러나심인 거고....
등등
즉 결론은 성경계시 전 구경은 3.1G이시다 이다.
바로 이를 유일신이라 칭함이라는 것이며
이는 단일신(양태론적 단일신론 포괄)과 유일신은(성경의 계시 삼일하나님) 전연 비교조차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단일신이란 이단적 사교나 바알 그리고 철학에서나 말해지는 것으로서,
-성경은 유일한 한분으로 단일 의미를 포괄하지만은 이는 본질적 한분이란 의미에서인 거고 동시 세분으로 나타나심으로서 세분으로의 한분이신 유기체이심을 계시하고 있음이다.
구약의... 신명이... 신약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단지 `아버지`란 이름이 신약에서 더 풍성한 의미를 얻는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비로소 삼위일체적 온전한 이름이 나타난다.``성부,성자,성신`` .... 헤르만 바빙크, 개혁주의 신론, CLC. 1988.8.15 p.p.115~157 중 154,157p.
예수가 속죄 장소인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다.- 홀베르다. 예수와 이스라엘. CLC.1995.9.10. pp.106~114
요한복음: 우리 가운데 육신이 되어 거하셨으니....그의 영광, 곧 아버지의 독생자시더라.
영광의 에스겔 성전이시며, 성육신으로 나타난 진리요,
`` 누구든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
-----------
참고문헌은 ::
유해무, 개혁교의학, 크리스챤다이제스트
벌코프, 조직신학 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개혁주의 신론, 헤르만바빙크/이승구역, 기독교문서선교회
박형룡, 교의신학 신론, 개혁주의신행협회
김준삼, 교의신학 신론 및 신앙고백서강해, 백석신학교
하문호, 교의신학 신론, 그리심
박해경, 조직신학요해, 아가페문화사
신 론, 제럴드 브레이, IVP
개혁교의학 신론, 차영배, 총신대학출판부
맥킨토쉬, 신비주의신학, 다산글방
어거스틴, 삼위일체론,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칼빈의 신론, 박해경, 이컴비즈넷
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CLC, 1985,11,20, p.135
아이히로트, 구약성서신학 2권,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9.30 pp.33,45
장국원, 고대 근동 문자와 성경, CLC
홀베르다. 예수와 이스라엘. CLC.1995.9.10. pp.106~114
칼빈, 기독강요
3.1 內, 안. 속, 내부, 내부구조 의 근거 :::
벌콥, pp.236. 279~287. 290
박형룡, pp.137(유일양식),188. 191. 194,199, 201-209 (203 어거스틴, 206내부, 201칼빈)
218. 220. 223. 225(칼빈). 233
유해무, pp.154. 163. 165(칼빈), 176-7, 182(내적관계), 186(내외적)
차영배, pp.16(內적), 21(밖안). 231-238, 76, 197, 202-204(아타나시우스). 220(원문찾아볼 것), 228(칼빈)
김준삼, pp.86.92, 93(칼빈, 신적 본질 안에 실체), 94 / 신앙고백서강해 46. 50내부구조로
하문호, pp.102. 105. 108. 111. 114-116존속양식(태?)
바빙크, pp,371. 372(內구별), 378, 383-385, 387, 398, 409-411, 413, 416, 427, 429-430, 432, 443-449, 458, 461-484, 484(내재적)
맥킨토쉬 신비주의신학, 다산 글방, pp.278, 291
어거스틴, 삼위일체론, pp.223 내부성
칼빈, 박해경 신론. pp.199. 200. 212. 213차영배? 106
차영배, 유해무?? pp.158-160. 174-5, 223, 242
바빙크, pp.435 신적 본질 안에 있는 존재 사실의 양식
글쓴이 / haabbu
...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별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21:21-23
계4:2-5, 5:5-6
..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더라
'성 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담 무덤 (0) | 2014.07.16 |
---|---|
둘째사람 예수는 하늘로서 낳으신 새인류로<구교와 신교의 차이점 논평> (0) | 2010.08.02 |
사9:6 -- 영존하시는 아버지 (0) | 2008.02.12 |
예수 은 삼십에 팔리심...마27:9 예레미야로~ (0) | 2007.06.05 |
[스크랩] 광명의 천사 (0) | 2007.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