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는 과연 인류를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었는가 살았는가의 현대의학적 최종 평결은?
다빈치코드에서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안죽고 도망친 후에<마호멧의 거짓말>,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서 멜로비 왕가가<프리메이슨의 거짓말> 가능해졌다는 것인데......
그럼 십자가 상 예수의 죽음을 아니면 살음을 현대의학적 관점과 함께 여행을 떠나 보자.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죽었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7세기에 쓰여진 코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디야 무슬림들은 예수가 실제로는 인도로 도망쳤으며 카슈미르 지방의 스리나가에 예수가 묻힌 장소라고 추정된 곳에 사원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1929년에 D.H. 로렌스는 소설에서 예수가 이집트로 도망가서 거기의 여사제인 이시스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으며 1965년에 휴즈 숀필드의 베스트셀러가 된 「유월절의 음모」에서 로마군인이 창으로 예수를 찌른 것은 예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그 때문에 십자가에서 산 채로 탈출하려고 했던 그의 복잡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1972년에 도노반 조이스가 쓴 「예수 두루마리」에서 기절 이론이 다시 등장하며 1982년 「보혈과 성배」라는 책에서 본디오 빌라도가 뇌물을 받고 예수가 죽기 전에 십자가에서 끌어 내려지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1992년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바바라 씨어링은 기절이론을 다시 주장했다.
복음서의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음날 닥쳐 올 사건을 예상하고 밤새도록 기도하였는데 땀이 핏방울이 되었다고 한다. 눅 22:44
이를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고 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을 때 일어나는 일로 사람이 심히 고민하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 성분이 몸에서 나오는 결과로 땀샘으로 소량의 피가 들어오게 되어있다.
이 혈한증이 일어나면 피부가 매우 약해지므로 군인들에게 채찍으로 맞으셨을 때는 피부가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을 것이다. 채찍은 보통 39개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땋은 가죽 안에 쇠 구슬과 뼛 조각들이 박혀 있어서 때릴 때마다 살을 파먹고 심하게 찢겨 나갔다.
이런 태형이 계속되면 피부 밑에 있는 골격 근육까지 찢겨지게 되고 찢겨진 살은 피범벅이된채로 리본처럼 덜렁덜렁 매달려 있게 된다. 3세기 유세비우스는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과 근골 그리고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태형만 당하고서도 죽었으며 죽지 않은자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고 <저혈랑의 쇼크>에 빠진다.
이는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나서 고통을 겪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심장으로 더 이상 피를 퍼 올리지 않게 됨으로 인해 혈압이 떨어지고 정신이 몽롱하거나 기절하게 된다. 그리고 신장은 남아 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단하며 몸은 흘린 피를 보충하기 위하여 액체를 요구하기에 목이 마르게 된다.
예수는 갈보리 언덕을 오를 때 이러한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라고 명령했다. 마 27:32
예수가 이미 끔찍한 채찍질을 당하셨기 때문에 손과 발에 못이 박히기 전에 이미 위독한 상태에 빠져 있었으며 내가 목마르다라는 장면은 지속된 저혈량쇼크 상태의 궁극점 끝을 의미한다.
예수가 태형을 당하고나서 십자가로 갈 때까지 살아 있었기에 끔찍한 채찍을 경험하고 피를 흘리긴 했지만 살아 남아서 도망쳤을 가능성은 없을까?
예수는 눕혀진 후에 십자가의 가로 들보 위로 팔을 뼏친 상태에서 못박혔다. 이 가로 들보는 ``패티블룸``(patibulum)이라 불렸고 십자가의 수직 기둥과는 분리되어 있었다. 로마군인은 7~5인치의 가늘고 뾰족한 대못으로 손목(손바닥의 1인치 위)에 박았으며(당시엔 손바닥과 손목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손목도 손바닥에 속했다. 이 못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바이다.)
이러히 손목 중추신경인 일명 척골(팔꿈치 끝을 부딪힐 때 마비되는 신경) 곳에 못이 박혔다. 바로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서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졌는데 그 단어가 excruciating로 `십자가로부터` 어원된 → 고문하다의 유래이다.
그런 다음에 가로 들보를 들어 올려서 수직 기둥에 부착했으며 예수도 끌어 올려지고 발에 못을 박았다.
십자가에 들어올려졌을 때 팔이 6인치 정도 늘어났으며 양쪽 어깨는 <탈골> 된다.
희생자가 십자가에 수직으로 매달리게 되면 질식하면서 서시히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데 질식의 이유는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숨을 내쉬기 위해서는 십자가 위에서 발을 세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근육이 잠시 이완될 수 있으나 발에 박혀 있는 못이 발을 점점 깊이 찌르게 되어 결국에는 못이 발 근육에 붙어 있는 뼈를 고정시키게 된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번복된 동작을 통하여 십자가의 거친 나무 결에 피 묻은 등이 긁히게 되며 완전히 지칠때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되다가 결국 발을 세울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호흡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소위 호흡산독증(혈액 속의 이산화탄소가 탄산으로 분해되면서 혈액의 산성이 증가함으로 심장 박동이 불규칙적으로 되는 것)에 빠진다. 따라서 예수도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할 때에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했을 것이다.
예수가 죽기 전에 저혈량성 쇼크는 심장의 박동 수를 지속적으로 빠르게 만들었으며 이것도 심장을 정지시킨 원인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되면 심장 주위에 있는 막 조직에 액체가 고이는 <심낭삼출>이 일어나며 폐 주위에도 액체가 고이는데 이를 <늑막삼출>이라고 부른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가 죽었음을 알고서 예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고 뺄 때에 피와 맑은 액체가 나오고 후에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는데 이것을 <심낭삼출>과 <늑막삼출>이라고 하는 것이다.
바로 요한의 설명은 현대 의사들의 예상하는 바와 일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요한이 현장의 직접 목격자임을 믿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살아서 내려올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아 남았을 가능성은 정말로 정말 없을까?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많은 피를 흘렸기에 이미 저혈량성 쇼크 상태에 빠져 있었으며 오랫동안 숨을 안쉬는 척하는 일이 불가능하며 더구나 창이 그의 심장을 찔렀기에 죽은체의 논쟁은 끝난다. 만약 예수가 살아서 도망갈 경우 군인들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확인을 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무튼 그래도 예수가 살아남았다고 해 보자.
그러면 스스로 세마포 수의를 벗고 무덤 입구를 막은 커다란 바위를 굴려내고, 보초를 선 로마군인들을 피해서 도망을 갔는데 이를 제자들이 찾아냈을 적에 의학적 몸 상태는 어떨까?
만약 살아남았다고 하자...못이 박혀서 구멍이 뚫린 발로 어떻게 걸을 수 있었겠으며 잠시 후에 멀리 떨어진 엠마오 도상에 나타날 수 있으며, 이미 탈골되어버린 팔을 어떻게 사용했을지도? 등에 심한 상처는 어쩌구? 창이 그의 허리를 찔렀는데 어떻게 서며???
제자들이 이런 예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라고 그에게 환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자신들도 언젠가는 예수처럼 부활한 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세계적인 조직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생각은 말 자체가 안된다.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형벌을 당한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윌리엄 D. 에드워즈 박사(미국의학협회 저널)에 기고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짖기를 역사적. 의학적 증거들을 살펴볼 때 예수는 창에 허리를 찔리기 전에 분명히 죽어 있었으며....따라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다는 가정에 기반한 해석들은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것이다.
글쓴이 / bada :: 리 스트로벨 저(윤관희. 박중렬 역). 역사적 예수. 두란노. 2002.11.7 pp. 251~268에서 요약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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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예수의 십자가 상 죽음이 왜 이토록 중요할까 그것은.....?
예수는 (인류를 위해 예비된 구약의 제물 메시야로서)
십자가 상에서 죽으신 구속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사랑이 하나님의 가장 큰 특성이 아니라면 머가 하나님일까?
아니면 다빈치코드가 고대하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죽지도 죽을 수도 없는 거짓메시야인 적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라는 말일까?? 무슨 의와 사랑으로써?? 거짓의 아비 마귀야말로 햇살의 밥 U.F.O로나 짜짠~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인류여 속지마라!
십자가에 죽으신 자비의 하나님을 외면하랴? 아니면 강압적 철권으로나 압사할 적그리스도를 추앙함이더냐? 스스로 속여 심판 받지 말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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