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전하다. integrity, be no blemish, Whole 결점이 없고 완전하다.
성경에서 온전하다의 개념은 이상적인 충만. 완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구약성경에는 이 개념을 표현하는 두 개의 히브리어 어근이 있다. (살렘과 타밈: 형용사 살렘의 문자적 의미에 대해서는 신25:15,27:6을, 타밈에 대해서는 레3:9,23:15를 참조)
신약성경에서 이 의미로 가장 자주 쓰이는 형용사는 텔레이오스 골3:14 히6:1로서, 적절한 혹은 정해진 목표(텔로스)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관련 동사 텔레이오오.
일반 헬라어에서도 텔레이오스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미숙한 유아의.. 에 반대되는 성숙한 또는 어른의 이다.
둘째 신비 의식과 관련된 또는 충분히 전수받은이란 뜻이다.
전자의 의미는 고전 14:20 엡4:13 히5:14(6:1)에 나타나며, 후자의 의미는 고전 2:6 빌3:15 골1:28에서 나타난다.
유사한 의미를 가진 형용사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아르티오스인데 딤후3:17에 나오며(한글개역-온전이라 번역) 이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모든 사항들을 해낼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가리킨다.
둘째 홀로클레로스인데 약1:4에 나오며 텔레오이스와 함께 쓰인다. (살전5:23 온전히로 번역됨) 아른트는 이 단어를 완전한 철저한 흠없는 손대지 않은 나무랄데 없는 으로 설명한다.
신약성경은 또한 훈련하고 결핍을 채워주며 잘못을 바로잡아 정돈하다 혹은 정당한 상태로 이끌다라는 의미의 카타르티조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7번 나옴, 역시 온전하다로 번역됨)
온전은 단순히 정해진 목표의 도달이나 이상적인 상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그 목표와 상태는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은 온전을 세 가지 분명한 관계로 말한다.
1. 하나님의 온전
성경은 하나님 (마5:48), 그분의 사역 (신32:4), 그분의 도 (삼하22:32 시18:30), 그리고 그분의 율법 (시19:7 약1:25)을 가리켜 온전하다고 말한다. 각 문맥마다 하나님의 찬연한 도덕적 영광을 전제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은 전혀 결함이 없으시며 큰 찬양을 받으실 만하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마5:48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이상적인 행위(특히 거역하는 자들에게 보이신 인애)를 그의 자녀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하신다.
2. 그리스도의 온전
히브리서 기자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되셨다고 말한다 (히2:10).
여기서 그가 지적하는 것은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받으신 일신상의 시험이 아니라, 친히 시험의 세력을 경험하시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대제사장의 사역에 큰 값을 치르면서 순종하심으로써 얻으신 상태를 가리킨다. (히5:7-10)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히10:12) 대제사장으로서 그 분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중보하시고(히7:25 10:19) 그들이 끊임없이 시험을 극복하기에 필요한 긍휼과 도우심을 늘 베푸시는(히4:14이하) 등 자기의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히5:9)이 되셨다.
그 분이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직접 시험을 받아 본 일이 있으시기 때문이다.(히2:17, 18, 5:2,7이하)
3. 사람의 온전함
성경은 사람의 온전을 하나님의 사람과의 언약 관계와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행하시는 은혜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야기 한다.
4.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신 언약관계
성경은 사람의 온전을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 이야기 한다.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하고 (창17:1 신18:13) 또 인정하는 (노아의 경우 창6:9, 아사의 경우 왕상15:14 욥의 경우 욥1:1)
온전으로서 다시 말하자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충성과 성실 그리고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경건한 예배와 봉사를 통한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표현이다. 이와같이 온전은 본질상 마음의 문제이다. (왕상8:61 왕하20:3) 따라서 마음이 온전치 않으면 겉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킨다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온전치 못한 것이다.(대하25:2)
온전은 그것의 자연스런 외적 표현인 정직과 일정하게 연관된다.(욥1:1,8, 2:3 시37:37 잠2:21) 마태복음 19:21에서 텔레이오스(온전한)는 소극적인 의미로 모자람이 없는 뿐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미로 하나님과의 언약에 성실하고 참됨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성경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언약의 관계를 온전케 하심에 관해서도 말한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다루는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을 온전케 하심의 주제이다.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그들의 언약의 상태를 가리킨다...온전하게 한다는 것은..그 백성이 주님을 경배하는 자들로서의 참된 언약의 관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그들을 하나님과의 충분한 사귐으로 이끄는 것이다.(데이빗슨 히브리서 p.208)
하나님은 옛언약, 제사장직, 성막 그리고 제사 제도를 더 나은 어떤 것으로 대치하심으로써 이 일을 하셨다. 히브리서에서 옛언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안의 살아 있는 사귐을 수립하기 위한 모세의 제도를 가리킨다. 한편 히브리서 기자는 그 구약의 제도로서는 죄사함의 확신을 충분히 줄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히7:11, 18, 9:9, 10:1-4)
그러나 새언약 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한 영원한 제사에 근거하여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을 받는다 (히10:11-18).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의 온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히 10:14)
이러한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에 대해서는 구약의 성도들은 도무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11:40) 물론 구약의 성도들도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신약의 성도와 동일한 복을 누리고 있다. (12:23, 24)
5, 하나님이 사람 안에서 행하시는 은혜의 역사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온전케 하심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과 사귐을 갖는 사람들을 영적인 유아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신다.(골3:10). 성도들은 이러 의미에서 온전에 이를 때까지 계속 장성해야 한다.(벧전2;2 히5:10 6:1 갈3:28)
마침내 이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빌3:12)
따라서 성화의 개념은 기독론적이며 또한 종말론적이다. 온전함이 이루어지는 영역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며(골1:28),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교제와 그리스도를 닮음은 그분이 다시 오셔서 교회를 온전케 하시고 그리스도인을 부활시키실 날에야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엡4:12-16 빌3:10-14 골3:4 요일3: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숙하고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통찰력(빌3:15,12),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조화를 이룬 성격(약1:4),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확신있는 사랑(요일4:12,17,18)의 영역들에서 상대적인 온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온전 개념을 직접 율법에 관련시키거나 무죄와 직접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전적인 무죄상태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목표이긴 하나(마5:48 고후7:1 롬6:19) 현세에서 완성되지는 않는다. (약3:2,요일1:8-2:2)
성도가 장차 영화의 은혜를 입을 때는 분명히 죄 없는 상태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성경의 온전 개념을 무죄상태와 동일시 한 다음 이땅에서도 노력하면 무죄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어둡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성경에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루고 있다고 표현되는 현재의 온전은 무죄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강한 믿음, 기쁜 인내, 그리고 넘치는 사랑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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